창백전 참가

스커트


나의 아침은 잠긴 가게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눈꺼풀 같은 셔터를 힘차게 올리다보면 잠이 달아난다. 제법 디자인에 신경을 쓴 나무문에 달린 종이 맑은 소리를 낸다.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희미한 먼지 냄새와 커피 냄새가 난다. 커피 냄새는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가게 곳곳에 배어버린 것이다.

초겨울의 해는 짧다. 9시가 되어도 바깥은 새벽녘처럼 어둡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간판 불을 켠다.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공기가 마지막 남은 잠을 마법처럼 가져간다. 밤새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다보면 30분이 훌쩍 지난다. 가게가 말끔해지면 머신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예비 추출을 시작한다. 필터에서 똑똑 떨어지는 커피 방울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머신은 오늘도 잘 돌아간다. 내 밥줄. 에스프레소를 버리기가 아까워 늘 우유를 타서 마신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치처럼 보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남는 재고를 처리하는 느낌이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과정을 마치고 나서 유리창을 닦을 때 쓰는 긴 걸레와 세제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나무문은 아무리 손님들이 만져대도 지문이 보이지 않지만 유리창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하루라도 닦아주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나는 곳이다. 누군가의 것인지도 모를 지문이 덕지덕지 장식처럼 붙어 있는 유리창은 외관상으로 썩 좋지 못하다. 매출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창을 닦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창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절반쯤 닦았을까. 내 고개가 무의식중에 건너편 횡단보도로 향한다. 역시나 내 시선을 사로잡는 스커트. 어제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체크무늬 스커트였는데 오늘은 데님 스커트다. 가게 앞은 4차선 도로라서 그 정도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언제나처럼 매끄럽고……아름답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시선을 천천히 위로 올린다. 동시에 신호가 바뀌고 매끄러운 다리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나는 티 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다시 유리창을 닦는다. 아니, 닦는 척 한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것 같아서다.

그녀는 늘 이 시간대에, 스커트를 입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내가 처음부터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유리창을 닦고 나면 오픈 시간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한눈을 팔 여유는 없다. 다만 그녀가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른 스커트를 입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상스럽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스커트가 도대체 몇 개인 걸까? 로 시작된 감상은 차츰 다리가 참 예쁘네, 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내 감상은…….

“저기.”

“……네?”

“가게 열었나요?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다리만큼 목소리도 예쁘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동그란 눈을 가볍게 접어 웃는다. 아.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도 예쁘다. 겨울바람 냄새가 섞인 샴푸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간다. 걸레를 챙겨 허겁지겁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뭘로 드릴까요?”

“따뜻한 라떼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겹도록 해온 일이건만 손이 떨린다. 머신에서 필터도 제대로 빼내지 못한다. 뭐야. 왜 이래. 손등을 후려치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에스프레소가 떨어지는 사이 우유를 데운다. 그녀는 카운터 바로 앞자리에 앉아 다리를 쓰다듬는다. 스타킹을 신었다고는 해도 맨다리나 다름이 없으니 추울 것이다. 평소 제공하는 것보다 우유 온도를 약간 높였다. 비린내가 나지 않을 정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 어딘가의 온도.

“주문하신 라떼 나왔습니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온다. 나의 손끝과 그녀의 손끝이 맞닿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감각에 나는 또다시 몹쓸 입을 놀리고 만다.

“이렇게 추운데 왜 그렇게 매일 짧은 치마를 입어요?”

“매일 입는 건 어떻게 아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놀리는 것 같이 들린다.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곳은 내 가게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설상가상 노래도 아직 틀기 전이라 카페는 고요하기 짝이 없다.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분홍색 틴트가 발린 입술이 도톰하니 달콤하게 보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제 내일부터는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네?”

“내일 또 봐요. 언니.”

컵을 가져가고 내 손에 지폐를 대신 놓아주고 그녀는 가게를 나선다. 나무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유리창 너머로 그녀가 손을 흔든다. 아. 예쁜 웃음. 예쁜 다리.

나는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얼굴이 데운 우유보다 뜨겁게 달아올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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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시원한 걸로 바꾸려고 햇는데 스킨이 마음에 드는 게 업엇다.

화면이 조금 더 좁아진 것 같다

덥다.

꺄악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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